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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8-07-04 15:02
[함기석] 양파쿠키 요리학원이 보이는 육거리
 글쓴이 : 안갑선
조회 : 2,510  
양파쿠키 요리학원이 보이는 육거리


함기석
 

시계는 집요한 피를 갖는다
의자가 없어질 때까지 의자에 바른다
선인장이 사라질 때까지 선인장을 핥는다
시계 속엔 열두 마리 방울뱀

양파머리 소녀가 냉장고에서 나온다
가스레인지에 불을 붙인다
코를 떼어 귀를 떼어 녹이고는 다시 붙인다
달궈진 프라이팬에 뱀을 올려놓는다
콧노래 부르며 참기름을 뿌린다 맛소금을 뿌린다
상추에 초장을 발라 맛있게 야식을 하고
랄랄라 대문 밖으로 나간다

아침이다
침대 밑에서 혀가 나온다
베개를 휘감아 침대 밑으로 사라진다
난 내 꿈이 인화된 베개를 찾아 침대 밑으로 들어간다
노란 유치원 버스가 서 있는 육거리가 나온다
옥상에서 혀들이 흐늘거린다

호른 모양의 나무들이 눈송이를 내뿜는다
책들이 걸어간다
베개도 걸어간다
나는 맨발의 잠옷 차림으로 눈길을 걷는다
안으로 걸으면 밖이 나오고
밖으로 걸으면 안이 나온다
머리 위로 얼음물고기들 지나간다

내가 다가가자 버스는 베개를 태우고 시장으로 간다
책들이 한 장 한 장 뜯겨 허공에 흩날린다
나는 멍멍히 서서 눈보라 속으로 멀어지는
버스의 항문을 바라본다
차창에서 하얀 손이 나와 하늘로 날아간다

다시 걷는다
앞으로 걸으면 뒤가 나오고
위로 걸으면 아래가 나온다
뱀들이 유영하는 거리 저편을 바라본다
요리학원 실습실에서
사람들이 한 꺼풀 한 꺼풀 소녀의 머리를 벗겨




당신을 위한 수탉의 모닝콜 / 함기석

 

갑자기 형사가 찾아오면
갑자기 나는 혐의자가 되고 용의자가 된다
갑자기 킁킁거리며 개가 다가오면
갑자기 나는 냄새나는 고깃덩어리가 되고
갑자기 탄환이 날아오면 갑자기 목표물이 된다
곤충채집자가 나를 채집하면 난 이상한 곤충이 되고
벌레연구가가 나를 연구하면 난 이상한 벌레가 된다 

내가 수염을 기르면 초승달이 수염을 기른다
내가 나팔을 불면 당나귀가 나팔을 분다
내가 수영을 하면 비행기가 수영을 한다
내가 속옷을 벗으면 가을 숲이 속옷을 벗고
내가 섹스를 하면 호텔이 수평선과 토마토 섹스를 한다
내가 세수를 하면 구름은 랄랄랄 면도를 하고
내가 외투를 걸치면 고양이는 호호호 화장을 한다
내가 외출을 하면 나무들은 하하하 담배를 피며 지나가고
가로등은 내 머리에 노란 우유를 쏟는다

내가 창공의 무지개를 둘둘 말아 허리에 두르고
눈썹 붙은 얌체 고양이 지지처럼
벤치에 앉아 시계를 보고 또 보며
시계 속으로 보이는 백만 년의 눈보라
백만 년의 바람소리 백만 년의 하늘을 보며
당신을 기다릴 때
갑자기 골목에서 방글방글 나타난다
갑자기 인라인스케이트 타고 나타난 죽음이
퍽! 나의 생을 핸드백처럼 낚아채 빙글빙글 달아난다 

그리하여 내가 죽으면 노랑머리 콩나물유령이 죽는다
내가 죽으면 붕어빵유령이 죽는다
내가 죽으면 고등어유령이 죽는다
어린 달걀들은 하늘을 맴돌고
당신을 위해 아침마다 모닝콜을 불러주던 나의 노래는
차디찬 물 속을 맴돌고
나의 피 나의 눈물 나의 숨결은 허공을 맴돈다

내가 죽고 당신이 죽고
나무가 죽고 새가 죽고 도시가 죽고 문명이 죽고
천둥과 함께 백만 년이 흐르고
번개와 함께 다시 백만 년이 흘러도
빙글빙글 지구는 계속 돌고
뱅글뱅글 슬픔도 고독도 우리들 눈깔처럼 계속 돌고
뺑글뺑글 존재도 농담도 우리들 불알처럼 계속 돌고
돌다가 돌다가 완전히 돌 때까지
우주는 랄랄랄 계속 돌고
시간도 히히히 계속 돌고
죽음도 헤헤헤 계속 돌고 
말들도 깔깔깔 계속 돌고



뽈랑공원 / 함기석

 

뽈랑공원의 아름다운 정문이 열린다
꽃밭에서 햇빛과 나비들 춤춘다
뽈랑색 벤치들이 보인다
뽈랑새 두 마리 자유로이 공원을 날고 있다
물푸레나무 아래 꽁치처럼 예쁜 여자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있다
아기가 젖을 빨다 스르르 잠이 들자
여자는 하늘 한복판을 푸욱 찢어
아기의 어깨까지 살포시 덮어준다
찢어진 하늘에선 푸른 물고기들이 쏟아지고
여자는 유모차에서 책을 꺼낸다
아기를 위한 자장가 뽈랑송을 부르며 책장을 넘긴다
여자가 책을 보는 동안 아기는 꿈꾸고
물고기들은 나뭇가지 사이로 헤엄쳐 다니다
책 속으로 사라진다
한 청소부가 후문에 나타난다
이상하게 생긴 뽈랑 빗자루로 공원을 쓴다
그러자 공원이 조금씩 조금씩 지워지면서
책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꽃밭이 사라진다
벤치들이 사라진다
나무들이 사라진다
하늘이 새들이 빛이 시간이 차례로 빨려들어가고
여자가 사라지면서 손에 들려 있던 책이
청소부 발 아래로 떨어진다
청소부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는다
을 주워들고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낸다
말들이 피운다는 뽈랑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인다
길게 연기를 내뿜으려 책을 펼친다
20페이지에 뽈랑공원이 나타난다
함기석이라는 휴지통이 보인다
여백이 되어버린 하늘이 보인다
유모차를 끌고 행간으로 사라지는 여자의 뒷모습이 보인다
사라진 새들은 사라진 빛을 향해 날아가고
여자가 머물던 물푸레나무 그늘 속에서
투명한 물고기들이 헤엄쳐나온다
샘물이 된 아기울음 흘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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