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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09-08 10:32
[김상미] 똥파리*
 글쓴이 : 안갑선
조회 : 2,194  
똥파리* / 김상미


  영화 「똥파리」를 보았다.「똥파리」속에는 '시발놈아'라는 말이 셀 수 없이 나온다. 그리고 그 말은 보통 영화의 '사랑한다' 는 말보다 훨씬 더 급이 높고 비장하다. 지랄 맞게 울리고 끈질기게 피 흘리는 그 영화를 다 보고 나와 아무도 없는 강가에 가 소주 한 병을 마셨다. 그리곤 목이 터져라 '시발놈아'를 스무 번쯤 소리쳐 불렀다. 그랬더니 내 가슴 안 피딱지에 옹기종기 앉아 있던 겁 많은 똥파리들이 화들짝 놀라 모두 후두둑 강물 위로 떨어졌다. 시발놈들!


비밀  / 김상미


  애인을 가슴에서 꺼내 벽에 걸어두니 참으로 조용하다.
벽에 걸린 벽의 침묵이 세속과 다른 냄새를 애인에게 발
산하여 애인은 지금 한창 침묵중이다.
  침묵이란 본래 심장 가까이 두는 물건이라 맛만 들이면
세상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은 깊은 맛을 발산한다.
  그래서인지 오랫동안 침묵 속에 침전해 있던 애인이 어
느날 덜컹 방문을 열고 들어오면 불과 얼음의  우화 따위
는 저 멀리 던져버리고, 방안은 금세 격동으로 치닫는다.
  저마다 제 몸에서 흘러나온 침묵의 해류에 휘감겨 십자
가에 매달리듯 서로에게 매달리게 된다.
  마치 그 속에서  정화되어 다시 솟는  분출만이  달리는
기차를 멈추게 할 수 있다는 듯!



개죽음 / 김상미
    
개죽음은 개의 죽음이 아니다
개죽음은 개같이 죽는 것이다

어느날 모든 일이 척척 잘 풀려
혼자서 느긋이 술집에 앉아
모처럼 흐뭇한 휴식 취하고 있을 때
느닷없이 뒷머리에 타타탕!
이유없이 어처구니없이 죽어 넘어지는 것
그게 개죽음이다.

아무도 당하고 싶어하지 않는
이 시대의 불운
개죽음은 도처에서 장소 불문하고
우리들에게 끼여든다
그것 피할 안전지대는 더이상
어디에도 없다

우리는 모두 제로이다



아, 고도(Godot)! / 김상미

 

따뜻한 양지맡에 앉아
햇빛 쬐고 계신 할머니

비어 있는 허공만
계속해서 비어 있는 허공만
갖고 노셨나

지나가다 문득 시선 마주쳐도
아, 그 눈!

정말 그 눈 속엔 아무도
아무것도 없네





시인 앨범 3 / 김상미

 시를 우습게 보는 시인도 싫고, 시가 생의 전부라고 말하는 시인도 싫고, 취미(장난)삼아 시를 쓴다는 시인도 싫고, 남의 시에 대해 핏대 올리는 시인도 싫고, 발표지면에 따라 시 계급을 매기며 으쓱해하는 시인도 싫다.

 남의 시를 훔쳐와 제것처럼 쓰는 시인도 싫고, 조금씩 마주보고 싶지 않은 시인이 생기는 것도 싫고, 文化林의 나뭇가지 위에서 원숭이처럼 재주 피우는 시인도 싫고, 밥먹듯 약속을 어기는 시인도 싫고, 말끝마다 한숨이 걸려 있는 시인도 싫다.

 성질은 못돼 먹어도 시만 잘 쓰면 된다는 시인도 싫고, 시는 못 쓰는 데 마음씨는 기차게 좋은 시인도 싫고, 학연, 지연을 후광처럼 업고 다니며 나풀대는 시인도 싫고, 앉았다 하면 거짓말만 해대는 시인도 싫고, 독버섯을 그냥 버섯이라고 우기는 시인도 싫고,

 싫어…

2004년 마지막 달, 시인들만 모이는 송년회장에서
가장 못난 시인이 되어 시야 침을 뱉든 말든
술잔만 내리 꺾다 바람 쌩쌩한 골목길에 쭈그려 앉아
싫다, 싫다한 시인들 차례로 게워내고 나니

니체란 사나이, 내 뒤통수를 탁 치며, 그래서 내가 경고했잖아.
같은 동류끼리는 미워하지도 말고 사랑하지도 말라고!
벌써 그 말을 잊은 건 아니겠지? 까르르 웃어 제치더군
바람 쌩쌩 부는 골목길에서





오렌지 / 김상미

 

 시든, 시드는 오렌지를 먹는다


 코끝을 찡 울리는 시든, 시드는 향기


 그러나 두려워 마라


 시든, 시드는 모든 것들이여


 시들면서 내뿜는 마지막 사랑이여


 켰던 불 끄고 가려는 안간힘이여


 삶이란 언제나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될 때에도


 남아 있는 법


 오렌지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나는 내 사랑의 이빨로


 네 속에 남은 한 줌의 삶


 흔쾌히 베어 먹는다



복사꽃 피는 언덕에서 / 김상미

 


  엄마, 복사꽃이 피었어요. 사람 사는 근처에 피어야 더 아름답다는 복사꽃, 복사꽃이 피고 있어요. 전생이 복사꽃이어서 아직도 내게 그 향기가 묻어 있다는 복사꽃, 느껴봐요. 꽃의 숨결, 꽃들이 부는 휘파람 소리, 못잊을 그리움은 저렇게 휘파람으로 부는 것이라며, 몸 구석구석으로 퍼지는 저 칼날 같은 꽃향기들, 눈으로 코로 입으로 콸콸 쏟아져 들어오는 그 향기로 진달래 화전 대신 복사꽃 화전을 만들어 먹었어요. 들어봐요. 엄마, 나예요, 나예요, 나라고요, 하며 내 영혼이 조각조각 꽃잎으로 전율하고 있어요. 복사꽃 한 잎 한 잎에 묻은 겹겹의 세월들이 온몸으로 환한 봄언덕을 물들이고 있어요. 꿈만 같은 봄바람 온 힘으로 앞서가고 있어요. 내 마음 깊이 잠든 엄마까지 깨우며, 이 세상 모든 머릿속 새장 문 활짝 열어제치고 있어요, 황홀한 아름다움으로, 환장한 찰나로 

 

 

 

 민들레 / 김상미

 

 

  너에게 꼭 한마디만, 알아듣지 못할 것 뻔히 알면서도, 눈에 어려 노란 꽃, 외로워서 노란, 너에게 꼭 한마디만,  북한산도 북악산도 인왕산도 아닌, 골목길 처마 밑에 저 혼자 피어 있는 꽃,  다음날 그 다음날 찾아가 보면, 어느새 제 몸 다 태워 가벼운 흰 재로 날아다니는,  너에게 꼭 한마디만, 나도 그렇게 일생에 꼭 한번 재 같은 사랑을, 문법도 부호도 필요없는, 세상이 잊은 듯한 사랑을,  태우다 태우다 하얀 재 되어 오래된 첨탑이나 고요한 새 잔등에  내려앉고 싶어,  온몸 슬픔으로 가득 차 지상에 머물기 힘들 때, 그렇게 천의 밤과 천의 낮  말없이 깨우며 피어나 말없이 지는,  예쁜 노란 별, 어느날 문득 내가 잃어버린 그리움의 꿀맛 같은, 너에게 꼭 한마디만


 

 

에덴의 동쪽 / 김상미

 


나는 나를 소홀히하지 않았기에
남도 소홀히하지 않았다

 

그러나 디디는 곳마다 생쥐투성이
세상에 생쥐들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푸른 하늘, 하얀 구름 위에도
생쥐들의 세미나 생쥐들의 축제
자동차 뒷좌석에 쌓아놓은 책 위에도
여기저기 심어둔 사랑에도
이 시대의 검은 낭만을 연주해대는 생쥐투성이
내 머릿속 생각들을 훔쳐 갉아먹는 생쥐투성이
미로처럼 길게 줄을 서서 모여들고 있다

 

마네의 선착장에도 모네의 정원에도
쇠라의 그랑자트 섬에도 오치균의 사북에도
바람은 불어오지 않고 생쥐 떼들이
태양과 달을 희롱하며 숨바꼭질하고 있다

 

그러나 미안하다, 생쥐들이여,
나는 언제나 너희들이 보지 못하는 곳으로
주사위를 던진다

 

그리고 그 주사위는 슬픔도 백일몽도 아니다
생방송으로 미친 듯이 울어대는 너희들의 아첨이
눈부셔, 눈이 부셔
너희들에게서 아주 멀어진 이야기들이다
내 이야기에 너희들의 웃음을 섞지 마라
너희들이 눈물도 섞지 마라
나는 내 이야기들로 너희들에게 어떤 덫도 놓지 않았다
나는 태양과 달 아래를 달리고 달려
지금도 에덴의 동쪽으로 가고 있는 중이다
내 발 끝에 걸린 검은 구름조각들이
너희들의 집 한가운데 켜 있는 불을 꺼뜨리고
너희들의 침대를 텅 비게 만드는 건
내가 에덴의 동쪽에서 태어나
아직도 에덴의 동쪽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 내 발자국들을 기억하겠는가?
눈을 크게 뜨고, 조심스럽게, 잡초처럼 다가오는
너희들이 아니고서!

 

 

 

잡히지 않는 나비 1 / 김상미

 

 

너무 먼 곳으로 나왔나 봐요
그가 보이지 않아요
꽃을 끌어안고 웃던 햇살도 보이지 않아요
차가운 바람만이 노련하게
언덕을 넘어 오고 있어요


그는 어디로 갔을까요?
푸른 하늘 속을 자유롭게 헤엄치던 하얀 구름도
땅의 체온이 그리운지
오랫동안 대지 위로 그림자를 떨구고 있네요


너무 먼 곳으로 와버렸나 봐요
낮에 뜬 저 반달처럼
혼자 너무 멀리 나와 떠도는 천성은
어쩔 수 없나 봐요


아무렴 어때요
이 세상과 작별인사 하려고
밤새 달려오다 넘어진
저 시간처럼
우리끼리 다정하게 작별인사 해요
눈처럼 흰 마음과 장미처럼 붉은 가슴으로
어젯밤 배표를 사 놓았어요


작고 아름답고 순한 배들일수록
깊은 바다 밑에서 그 일생을 마치듯이


정말 이 세계는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스스럼없이 편히 쉬어요
잡히지 않는 나비, 내 사랑이여!
 

시집 『잡히지 않는 나비』(천년의 시작, 2003) 중에서

 

 

 

아이스 바 사랑 / 김상미
 


  그녀는 나를, 어리디어린 나를 개목걸이에 걸어 창가에 묶어 두었어요,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빵을 만드는 빵집 아저씨와 세상에서 가장 질기고 아름다운 구두를 만드는 구둣방 아저씨를 번갈아 만나야 했거든요, 사랑은 징벌이야, 우리는 누구도 혼자 살지 못하도록 벌 받은 존재들이야, 나는 그녀의 징벌 때문에 날마다 개목걸이에 개처럼 묶여 멍하니 창문 너머 세상을 구경해야 했어요, 매일 매일이 똑같은, 오백 원짜리 아이스 바처럼 단순하고 시시콜콜한 나날의 연속이었어요,


  참다못한 나는 그녀에게 소리쳤어요, 창문 대신 책을 갖다달라고, 아아, 채~액! 그녀는 아버지가 버리고 간, 개목걸이에 묶여 하루 종일 독서하는 어린 소녀, 라는 책을 휘~익 내게로 던졌어요, 나는 매일 매일 그 책을 읽었어요, 그리곤 그녀가 아저씨들이랑 땀 뻘뻘 흘리며 침대 시트를 더럽힌 후 가져오는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빵과 세상에서 가장 질기고 아름다운 구두를 먹고, 신고, 먹고, 신고.... 하면서 훌쩍! 훌쩍! 자라났어요,


  반쯤 자란 내게 그녀는 개목걸이 대신 이제 지폐를 주며 나를 밖으로 내몰았어요, 내가 있던 자리에 커다란, 아주 커다란 챔대를 들여놓아야 했거든요, 나는 그녀가 준 돈으로 시시껄렁한 담배도 피우고 멋대가리 하나 없는 남자아이들과 술도 마셨어요, 그러나 내 눈에는 언제나 개목걸이에 묶여 하루 종일 독서하는 어린 소녀만 보였어요, 호호 입김만 불어도 금세 줄줄 녹아내리는 오백 원짜리 아이스 바 같은,


  그래도 나를 이만큼 키운 건 그녀의 징벌 같은 사랑이고 내 몸을 살찌우는 건 빵집 아저씨와 구둣방 아저씨의 줄줄 녹아내리는 아이스 바 사랑이니, 싫어도 어쩌겠어요, 우리는, 그 누구도, 혼자서는 살지 못하는 벌 받은 족속들이니, 나는 평생 보이지 않는 그녀의 개목걸이를 목에다 걸고 육체가 영혼을 벗어던지는 그 순간까지, 인생이 주는 감동을 금단한 채 아이스 바처럼, 아이스 바 사랑으로,


  내 역할을, 아무리 발버둥쳐도 변경되지 않을 내 역할을, 내가 다 녹아 없어질 때까지, 줄줄... 


 -2007년 젊은시인들 제3집  <피터팬 사막에 가다> 중에서-
 

 

 

럭셔리 제너레이션* / 김상미

 

 

페라가모 구둣가게 앞에 서 있는 소녀
프라다 가방을 들고 버버리 코트를 입고
불가리 선글라스를 머리에 쓰고
티파니 목걸이를 한,


앳되고 앳된 소녀
명품으로 온몸이 반짝이는,
럭셔리 제네레이션


(아, 진열장 위의 초록색 페라가모 구두!
저 구두를 사려면 두세 명의 고객을 더 만나야 하는데…)


프라다 가방을 열고
그 안에서 쪼그만 루이 비통 수첩을 꺼내는 소녀


(누굴 고르지?)


오래된 그리운 편지를 읽듯
수첩에 적힌 깨알 같은 이름들을
읽어내려가는 소녀


(A와 K,그리고 H
이 아저씨들이라면 날 애완동물 다루듯
부드럽게 대해줄 거야
풋사과처럼 춧춧한 내 피부에
지워지지 않는 탐욕으로 얼룩진 모욕
남겨놓지 않을 거야)


앳되고 앳된 소녀
가늘고 긴 속목에 찬구치 시계를 본다


(시간도 적당하네, 곧 퇴근시간이 될 거야)


(초록색 뱀 같은 저 페라가모 구두
저 구두만 사면
그래, 저구두만 내 것이 되면
청보라색 달개비꽃처럼 새치름히
다시는 이런 짓 안 할 테야
다시는 명품 땜에 내 몸 더럽히지 않을 테야
저 초록색 뱀 구두만 갖게 되면…)


검은 설탕처럼 달콤한 소녀
21세기 화려한 쇼윈도 앞 어디에서나 볼 수 있고
만나본 적 있는
나와 당신들의 무섭고 아름다운 딸,
럭셔리 제네레이션





김상미
  1957년 부산 출생. 1990 《작가세계》 여름호로 등단. 시집으로 『모자는 인간을 만든다』『검은, 소나기떼』『잡히지 않는 나비』가 있음. 박인환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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