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베어지다
詩 안갑선
시야를 가린다는 이유로
나무를 베고 가지치기했다
아름드리 허공이 송두리째 우지끈 쓰러졌다
그늘을 잘랐고 하늘을 뚫었고 바람을 베어낸 것이다
나무는 섬뜩한 독기 품은 뿔을 가지게 되었다
흉물스러워진 모습 감추려는 듯
환삼넝쿨 힘겹게 걸쳐 입고 침묵했다
다음 해 봄이 되어서도
버려진 나무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 몽우리 맺고
꽃 피울 준비 하고 있었다
말라 죽고 있었다
무대 잃은 새와
하루아침에 처자식 잃고 집 잃은 곤충도 있었다
잡목이라며 함께 버려진 사람 중에
자살했다는 소식도 들었다
바람도 함께 죽었으므로 침묵했다
하루는 그루터기에서 실핏줄 같은 그늘이
빈 하늘 메우고 있는 희망을 보았다
좌절과 고뇌에 갈려 낡아진 가슴에
납작 숨죽이며 숨어 있던 상처의 딱지가
꿈틀 일어서는 통증을 느끼는 순간
베어진 나무 중에
뿌리째 뽑혀 쿵 쓰러졌다는 열 다섯번째 뉴스를
만물이 소생하는 봄날에 또 들어야만 했다
영원한 것이 없는지라 죽음은 두렵지 않으나
꼼지락거리는 가지를 보며
먼지만 자욱한 눈물샘에
"나는 살고 싶다."라고 혈서를 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