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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

詩 안갑선

육신의 방에 책상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을 알았다. 바쁘게 뛰어다닌 삶을 묶고 서랍을 열어보니 서랍은 비밀을 궁핍하게 받아먹기만 하고 토해내지 않았던 것도 알게 되었다. 후회 없이 완벽하게 살아왔다고 자부심 느꼈는데 평소 서랍을 비우지 못해 해고라는 물폭탄 맞아 축축하고 칙칙한 고뇌와 번뇌의 무게가 가중되어 낡은 관절이 견디지 못하고 삐끄덕 거리는 것을 알았다. 이제 서랍을 털어버리고 노출된 벽에 걸어 두었으면 좋겠다 싶다. 그런데 그 벽면조차도 눅눅한 곰팡이 검게 피어 붙여 놓을 공간이 없다. 서랍에서 고립을 뚫고 몇 개의 비밀이 튕겨 나왔다. 비가 오면 빗줄기를 가락가락 떼어 포장하고 눈이 오면 함박눈 송이송이 꾸려 선물했던 사연들이 수취인 불명으로 발송되지 못하여 되돌아온 반송 우편, 봉투가 먼지에 찌들어 찐득찐득하다.

육신의 방을 황토로 새 단장 하기로 했다. 방 한가운데 해바라기도 키우며 발송되지 못한 사연은 [說話]설화가 되기 전 당신의 방에 고립시키기고 휴식이 필요한 사연은 마실을 보내기로 했다. 필요 없는 사연은 분리수거 하고 당신의 방문을 두드리기 위해 자유로운 왕래의 길을 연결하기로 했다. 이제 묵힐 사연이 없게 되었다. 앞으로도 쓰고 쓰다가 얼룩 생기면 탁월한 치유의 효능 있는 황톳물로 붓질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