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와 갈 곳 없어 강변에 앉아 있다 불이 꺼져 암흑이 된 공장처럼 눈도 멀어 강물도 어둡다 두껍게 퇴적된 물결 속에 갇혀 발버둥치는 고기떼를 보면 붉은 복면에 붉은 머리띠 묶은 얼굴 없는 노동자가 생각난다 팔뚝마다 불끈 쥔 주먹 횃불로 태우며 목의 힘줄 퉁그러지도록 얼굴 벌겋게 데운 채 살려 달라고 외치고 있다 눈에서 핏물이 흘러 그 떨어진 핏물 받아 밥 말아먹으며 죽어서도 기계 앞에서 미라가 될 때까지 일하겠노라 외치고 있다 알맹이를 잃고 껍데기로만 강변에 앉아 있다 천렵꾼에게 물고기 수십 마리가 투망에 체포되어 끌려갔다 다시는 강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저 철옹성처럼 깊은 철창에 갇힌 고기떼도 삶을 위하여 새총에 볼트를 장전하고 표적을 정조준할지 강물을 걷어내고 싶다 산자는 기쁘고 죽은 자는 슬프나 소외된 자는 괴롭다 일터로 뛰어들어 땀 대신 시너로 온몸에 불붙여보겠다는 것과 시너 대신 땀으로 온몸 범벅하고 싶다는 것은 흑백 논리 살이 터지고 뼈가 부러지도록 일하고 싶으나 돌아갈 곳 없는 소외된 자는 이곳 강가에서 물결에 의해 얼굴이 일그러지게 스케치 되고 있다
